전기통신사업 분야 공사화 계획은 1960년대 중반부터 추진되었다. 국가 사회적인 여론 성숙과 정치적 격변을 거쳐 1980년 12월 19일 '통신사업경영체제 개선방안'이 확정됨으로써 전기통신사업 공사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다.
체신부는 법적 근거 마련에 착수하여 1980년 3월 한국전기통신공사법을 제정한데 이어, 4월에는 전기통신법을 개정하여 제도적인 장치를 마련했다. 공사법의 주요 내용은 종사원의 신분과 정년을 공무원 재직시와 동일하게 보장하며, 공사 운영의 자율성을 보장하여 경영 안정을 도모한다는 것이다. 공사법에 따라 정부는 체신부차관을 위원장으로 공사설립위원회를 구성하여 공사화 작업에 박차를 가했다.
위원회는 공사 전환을 3단계로 분리하여 1단계로 1981년 8월 31일까지 계획 수립을 완료하고 2단계로는 12월 31일까지 실제 이관작업을 완료하여, 마지막 3단계로 1982년 3월 31일까지 결산작업을 완료하기로 일정을 확정했다. 이 기본계획에 따라 체신부는 순차적으로 인원 및 재산 분리작업을 진행하여 1조 1268억원에 이르는 출자 자산을 포함하여 총계 2조 4322억원의 재산을 인계했다.
1981년 11월 16일, 정부는 현역 국회의원 이우재 씨를 초대 사장에 임명하여 사무 인수 인계를 마무리했으며 12월 10일에는 이사,감사 등 경영진을 구성하고 공사 설립등기를 마침으로써 역사적인 한국전기통신공사 설립을 완료했다. 이관된 체신관서 수는 직할기관 5개, 전신국,전화국,전신전화국 및 전신전화건설국 등 현업기관 148개 등이었으며 이들 기관은 이관과 동시에 정부 부처에서 정부투자기관으로, 종사원은 공무원 신분에서 국영기업체 직원 신분으로 전환되었다. 사업의 주요 수입원인 가입전화시설은 349만여 회선, 가입자는 325만 여명이었고, 1981년 전기통신사업 수입은 8092억 원이었다.
1982년 1월 1일, 한국전기통신공사는 그 동안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기본통신 수요를 충족시키고 질적으로도 최고 품질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목표하에 힘차게 출항했다. 이땅에 전기통신이 들어온 이래 줄곧 정부에서 운영해오던 사업을 이관받아 정식 업무를 개시함으로써 한국전기통신공사는 국가 핵심 기간산업의 중요한 한 축을 담당하게 되었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정보통신 20세기사 , 2001)
[통신] TDX-1 최초 상용설치(1986)
외국교환기 도입에 따른 문제점이 누적되고 1980년대 이후 매년 100만회선 규모로 통신시설 확장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되자, 국내산업을 보호하고 통신망 운영기술의 자립화를 실현시키기 위해 전전자교환기의 국내 개발이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전전자교환기술은 컴퓨터 및 소프트웨어기술, 반도체 및 소재기술, 시스템 엔지니어링기술 등 여러 가지 첨단기술의 복합기술로서 전전자교환기의 국내 개발은 정보통신기술의 자립을 가능하게 함은 물론, 정보통신산업의 육성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1976년 2월 제7차 경제장관간담회에서 전전자교환기 국내개발이 결정되었으나 실질적인 연구가 시작된 것은 1977년 한국전기통신연구소(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가 설립되면서부터이다. 1977년 시분할교환기 개발 타당성 조사를 거쳐 1979~1981년 3차례에 걸친 전전자교환기 실험시제품 개발 경험을 토대로 성공에 대한 확신을 얻은 정부는 1981년 10월 작성된 제5차 경제사회개발 5개년 계획의 통신부문계획을 통해 TDX개발사업 추진을 확정하고 1982~1986년까지 262억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하였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전자통신개발추진위원회(TDTF)의 정책의결을 거쳐 한국전기통신공사에 TDX사업단을, 한국전기통신연구소에는 TDX 개발단을 설치하여 체신부(정책결정 및 개발사업 총괄조정), 한국전기통신공사(기능요구사항 제시, 구매규격 작성, 상용화시험), 한국전기통신연구소(연구개발 주도), 생산업체(제품생산, 분담개발) 간의 역할분담을 명확하게 하였다.
1982년 10월부터는 9,600회선 용량의 TDX-1 시범인증기 개발에 착수하여 1983년 하드웨어 및 소프트웨어 개발을 완료하고 1984년 4월 서대전 및 유성전화국에서 개통하여 일반가입자 2,800회선을 연결하여 1985년 5월까지 3차에 걸친 종합인증시험평가를 실시하였다. 종합인증시험평가는 한국전기통신공사의 TDX사업단이 주관하여 사용자로서의 요구조건이 만족되고 있는지 면밀하게 시험되었으며, 평가결과 상용 배치의 가능성이 입증됨으로써 한국전자통신연구소로 하여 1984년 8월 삼성반도체통신(주), 금성반도체(주), 대우통신(주), 동양전자통신(주) 등 국내 4개 업체를 선정하여 TDX개발사업 기본협약을 체결토록 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을 거쳐 1986년 3월 4개 업체에서 생산한 TDX-1 시험생산기 24,000회선이 가평, 전곡, 고령, 무주지역에서 개통되었다.
시험생산기는 국내 공중통신망에 최초로 적용된 국내 개발 시스템이라는데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중소도시 및 농어촌에 대량으로 공급되기에는 기술적인 한계점이 많았다. 따라서 시험생산기 운용과정에서의 문제점을 보완한 양산기 개발에 착수하여 1986년중 개발이 완료되었고 1987년 2월 전국 36개 지역에 189,000회선이 개통되고 본격적인 양산 공급에 들어갔다.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의 개발은 국내 통신서비스의 질적 수준을 단번에 끌어올렸다. 통신서비스 측면에서 보면 교환기의 대량 공급은 전화적체 해소는 물론이고 다양한 전자식 특수서비스의 실시로 가입전화 요금을 대폭 인하하는 동기를 제공하였다.
그리고 전국 전화광역자동화가 실현됨에 따라 농어촌 지역에 전화가 대량 공급되었을 뿐만 아니라 전신전화의 고장율 감소와 통화 완료율 증가를 가져왔다. 결과적으로 TDX 개발은 전화가입자수와 통화량의 증가로 이어져 통신사업의 수익을 늘릴 수 있었으며 인력과 경비 절감에도 큰 몫을 하는 등 경영의 효율화를 가져왔다.
TDX 교환기 발전과정
구분
선생개발품
시험인증기
TDX-1 (시험생산기)
TDX-1A (양산기)
TDX-1B (용량증대)
TDX-10
* BHCA : 1시간 동안 교환기가 처리할 수 있는 최대 호수(呼數)를 나타내는 단위
개발기관
연구소
연구소
연구소
연구소
연구소 4개 업체
연구소 4개 업체
개발기간
1978~81
1982~83
1984~85
1985~87
1986~88
1987~91
회선용량 (회선)
500
1,200
9,600
10,240
22,528
100,000
통화량(Erl)
700
1,200
1,600
1,600
3,600
26,000
호처리용량 (BHCA)*
3만
6만
10만
10만
22만
120만
최초개통일
1982.7
1984.10
1986.2
1987.2
1989.4
1991.11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의 정보화 전략, 2003)
[통신] 통신사업자 분류제도 최초 채택 및 부분적인 경쟁도입(1991)
1980년대 들어 체신부는 고질적인 전화적체와 낮은 수준의 통화품질, 다양한 통신수요와 통신환경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자 전기통신 정책과 사업기능을 분리하였으며 통신서비스 분야별 전문사업자를 지정하였다.
이러한 정부 정책의 결과로 기본통신시설이 대량 확충되었으며 통신서비스의 저변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말에 이르러 통신 산업의 성장잠재력을 주목한 대기업의 관심과 통신서비스 수요의 다양화와 통신기술의 발전, 세계적인 통신사업의 경쟁도입 및 규제원화 추세,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주요국가의 통신시장 개방요구 등으로 통신환경은 급속하게 변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체신부는 1989년 3월 정보·통신발전협의회를 구성하여 통신사업의 구조개편방안 연구를 수행하였으며, 연구결과를 기초로 1990년 7월 통신사업 구조조정의 내용을 확정하였다.
정부는 국제전화가 위성통신·광통신 등 전송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소규모의 초기비용으로도 운용이 가능하게 됨에 따라 신규사업자의 참여가 용이하게 되고, 경쟁도입 시 요금인하에 따른 이용자의 편익증진과 사업 효율성도 증대될 것이라는 판단 하에 국제전화사업부문에 경쟁을 도입하였다.
또한 이동통신의 경우 기존의 통신보안 등 규제 위주의 정책으로 활성화되지 못한 측면이 있었으나, 생활수준의 향상과 경제활동의 다양화 등으로 언제 어디서나 통화가 가능한 이동전화를 포함한 이동통신의 수요가 증가하였다. 따라서 이동통신사업의 활성화를 위해 경쟁을 도입하여 민간사업자의 사업능력과 창의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무선통신부문에도 경쟁을 도입하였다.
이와 함께 정부는 1990년 10월에 부가통신사업을 조기에 경쟁체제로 구축하기 위하여 시장진입제도를 기존의 승인제에서 등록제로 전환하고 한국통신에게도 부가통신부문에 진입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의 정보화 전략, 2003)
[통신] 전화 2,000만 돌파(1993)
1978년 10월, 1차로 '군(郡) 단위 통신망 광역화계획'을 수립하여 다음해 경기도 평택군을 모델 케이스로 군단위 모국(母國)에 전자식 디지털교환기를, 읍,면교환국에 전자식교환기를 공급하고 전송로 집선(潗線) 장치를 설치하여 시험운용했다. 이 시범사업 결과 몇 가지 결점을 보완하여 전국 전화광역자동화계획을 수립하게 되었다. 1980년 4월에 확정된 계획의 주요 내용을 보면 적용기술은 디지털교환기 및 전송로 집선장치로 하여 1981년부터 1988년까지 가입구역 광역화 및 교환 방식 자동화를 완료하는 것이었다.
사업 시행결과 1986년까지 전국 10호 이상 2만 4711 마을에 전화를 가설하여 전국 모든 지역이 전화가입구역에 편입되었다. 그 이전에는 1960년대 이후 면단위 우체국에 설치되어 있던 전화교환대에서 반경 1.5Km 이내 지역만 지역가입지역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이후 통신사업 5개년 계획 중 농어촌 통신시설 확장계획에 따라 20호 이상 6만 6591개 마을까지 전화가 설치되어 있었다.
1982년 6월에는 '섬마을 전화 자동화 계획'을 수립하여 인구 50인 이상 거주하는 487개 섬에 전화자동화사업을 시작했으며, 이후 새로 수요가 발생한 섬에 추가로 사업을 실시하여 1991년 독도에 자동화시설을 마침으로써 전국 525개 유인도전화자동화사업을 완료했다.
교환방식으로 채택한 디지털교환기는 한국전자통신연구에서 개발한 국산 TDX-1을 사용할 계획이었으나 개발에 시일이 필요하여 우선 AXE-10 등 외국산 기종을 도입, 설치했다.
1986년 3월에는 경기도 가평,전곡, 전북 무주, 경남 고령전화국에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1 2만 4000대를 설치, 개통함으로써 본격적인 국산교환기시대를 열었다. 이후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시리즈는 발전을 거듭하여 우리나라가 통신 선진국으로 진입하는데 선도적인 역할을 했다.
모두 9조 9191억여 원이 투입된 전국전화 광역자동화사업은 폼스킨 케이블(Foamskin Cable) 전환에 따른 통화품질 및 경제성 개선, 통신구(通信構) FC관 대체로 인한 예산절감 효과, 지하철 개통 및 광케이블 도입으로 인한 혁신적인 통신구 운용 등 다기면에 걸쳐 통신 선진화로 연결되었다. 이로써 전화 적체를 완전 해소 했을 뿐만 아니라 전국 어디서든 세계 각국과 즉시통화가 가능한 통신 선진국이 되었다. 1987년 6월 30일 완성된 전국 전화자동화사업으로 인해 그해 9월 30일 전화 1000만 회선을 돌파한데 이어 1993년 12월에 2000만 회선을 넘어섬으로써 세계 8위 시설국으로 떠올랐다.
1995년 8월 5일 오전 8시 10분, 미국 플로리다주 케이프 캐너베럴 공군기지에서 국내 최초 통신방송위성 무궁화 1호가 발사됐다. 온 국민이 위성 생중계를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무궁화를 실은 Delta II 로켓은 장엄한 불꽃을 내뿜으며 하늘을 향후, 우리 위성과학의 미래를 향해 힘차게 솟아 올랐다.
무궁화 1호는 이륙 1시간 16분 44초 후 Delta II와 분리되어 정지궤도에 진입을 위한 천이(遷移)궤도에 들어섰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세계 22번째 상용위성 보유국이 되어 위성을 통한 디지털방송 및 초고속 데이터통신서비스를 독자적으로 행할 수 있게 되었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정보통신 20세기사 , 2001)
[통신] CDMA 세계 최초 상용화 성공(1996)
1996년 1월 한국이동통신에서, 4월에는 신세기통신에서, 한국전자통신연구원이 오랜 연구 끝에 세계 최초로 독자 개발한 최고 수준의 CDMA 상용서비스를 개시했다. 이는 이동통신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당당히 기술 선진국으로 우뚝 섰음을 의미하는 행보였다. 이 CDMA 상용화는 특히 유럽식 GSM방식과 TDMA 및 CDMA가 혼재되어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있는 미국 시장에 영향을 끼쳐 CDMA가 우위를 점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정보통신20세기사', 2001)
[통신] 시외전화의 경쟁체제 도입(데이콤 082서비스 개시)(1996)
1995년 3월 정부는 데이콤을 제2의 시외전화사업자로 지정하였으며 데이콤은 1996년 1월부터 한국통신에 비해 최고 9% 저렴한 요금으로 서비스를 개시함으로써 시외전화부문의 경쟁체제 기반을 확립하였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의 정보화 전략, 2003)
[통신] 시내전화 경쟁체제 도입(1999)
시내전화 경쟁도입 정책에 따라 시내전화사업권을 신청한 데이콤 주도의 컨소시엄인 하나로통신이 선정되어 하나로통신이 1999년 4월 1일부터 시내전화서비스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우리나라 통신시장은 지난 100년간 한국통신에 의한 독점체제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의 정보화 전략, 2003)
[통신] 세계 최초로 CDMA-2000 1x 상용화(2000)
우리나라는 세계 최초로 2000년 10월 cdma2000-1x 상용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였으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맞이하여 cdma 2000-1x EV-DO 상용서비스를 전국 10개 지역에 도입하기 시작하였다. 우리나라는 CDMA 산업화 이후 이동통신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선진국이며 동시에 세계 최고수준의 무선인프라를 확보한 국가가 되었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의 정보화전략, 2003)
[방송] 디지털 방송시대 개막(2001)
2000년 8월 31일부터 SBS TV가 국내 최초로 HDTV 시험방송을 실시하여 2001년 10월 26일 수도권 일부지역을 대상을 본방송을 실시함으로써 우리나라도 본격적인 디지털 TV 시대에 돌입했다.
(자료 : 정보통신부, 한국정보통신 20세기사 , 2001)
[방송] 국내 최초 디지털 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Skylife) 서비스 개시(2002)
우리나라는 위성방송을 통한 통합방송법이 1999년 12월에 국회를 통과하여, 2000년 12월 한국통신 주축의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 컨소시엄이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자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2002년 3월 1일 디지털위성방송 스카이라이프(Skylife) 서비스가 개시되었다. 국내 최초로 디지털위성방송 서비스를 개시한 스카이라이프는 법제도적 혼란 및 선발사업자와의 치열한 경쟁 등의 시장여건 속에서 1년 8개월여 만에 가입자 100만, 점유율 6.1%을 달성(총 가구 수 대비)하였다.
* 위성방송(satellite broadcasting)이란 지상에서 전송한 방송신호를 지구로부터 36,700km 떨어진 정지궤도의 위성을 이용하여 지상의 수신안테나에 재전송하여 수신하는 방송의 한 형태로, 디지털 위성방송은 100% 디지털 방식으로 이뤄져 다채널, 쌍방향, 광역화, 고화질 등을 특징으로 하는 방송이다.
[방송] 위성 DMB/지상파 DMB 상용서비스 개시(2005)
2005년 5월 1일, 한국은 일본의 뒤를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위성 DMB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지상파 DMB는 2005년 12월 1일 본방송을 개시하여, 현재 KBS, MBC, SBS, YTN, 한국 DMB, 유원미디어 등 6개 사업자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자료 : 한국전산원, 2006 국가정보화백서, 2006)
[통신] 세계 최초 HSDPA(고속하향패킷접속) 상용서비스 개시(2006)
HSPDA(고속하향패킷접속) 상용서비스가 휴대폰 기반으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2006년 5월 16일부터 시작되었다.
비동기식 IMT-2000 사업자인 SKT는 HSDPA 단말기(삼성전자 W200) 출시와 함께 전국 주요 25개시를 대상으로 상용서비스를 개시하여 연내에 전국 84개시로 서비스 제공지역을 확대할 예정이다. HSDPA(상향 2Mbps/하향 14Mbps)는 W-CDMA의 다운링크 속도를 향상시킨 서비스로서 동기식 EV-DO (상향 153.6Kbps/하향 2.4Mbps)보다도 빠르며 고품질의 화상전화, 고속데이터서비스, 편리한 글로벌로밍 등을 제공한다.
[통신·방송] 세계 두 번째로 BcN(광대역 통합망) 상용화
KT는 제주도 지역의 시외 전화망을 BcN(Broadband Convergence Network : 광대역통합망)으로 전환 완료하고, 상용서비스를 시작했다고 2006년 6월 14일 밝혔다. 이는 2004년 상용서비스를 시작한 이탈리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다.
BcN(광대역통합망)은 유선, 무선, 방송, 인터넷 등 서로 다른 네트워크의 기능을 융합해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차세대 통신망으로써, 정부가 추진 중인 u-IT839 전략의 3대 첨단 인프라 중 하나이다.
[통신·방송] 실시간 IPTV 방송서비스 개시(2008)
IPTV 도입논의는 2004년 하반기부터 시작되었으나 법 체계가 방송과 통신을 달리 규율하기 때문에 IPTV를
어떤 방식으로 법제화할지에 대한 논란이 수년동안 지속되었다. 법제화가 지연되면서 통신사업자들은 2006년부터 2007년 중에 실시간 방송이
포함되지 않은 IPTV-VOD 서비스를 개시하였다.
실시간 IPTV 방송의 법제화는 지연되었느나 시행령 등 하위 법제의 제정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되었으며, 이에 따라 방송통신위원회는 오픈
IPTV, SK 브로드밴드, LG데이콤, KT의 4개 법인으부터 2008년 8월 28일과 29일 양일에 걸쳐 사업허가신청을 받아 사업계획서를
심사하여 9월 8일 IPTV 제공사업자로 SK 브로드밴드, LG 데이콤, KT의 3개 사업자를 선정하였다. 신규 사업자 중 KT가 최초로
11월 17일 실시간 IPTV 방송서비스를 상용화하였으며, 나머지 2개 사업자들은 2009년 1월부터 실시간 방송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